범용성이라 함은, 현 세대가 사용하는 사회적 밈이 곧 이전 세대의 것임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다.
말인 즉, 현 세대가 영위하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부터 시작하여 유교적 전통, 존댓말 등은 모두 이전 세대가 시간을 들여 야금야금 만들어내거나, 이어온 밈들이다.
이러한 밈들은 단정적으로, 지역적 구획에 의해 구분된다.
또한, 이러한 밈들은 타지역으로부터 타인이 흘러들어와 사회적 밈 간의 충돌을 야기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영위된다.
왜냐하면, 사회적 밈의 원천 그 자체는 개인의 심오한, 새로운 어떤 발상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것이라는 사실에 있기 때문이다. 말인 즉, 사회적 밈은 그 원형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닌, 꼭 이전 세대의 것을 모방하면서 발생한다.
2020년을 앞둔 2019년의 사회적 밈은 비결혼, 비출산, 탈관습화, 개인주의의 확산, 다문화, 다자주의 등에 있다. 이것들은 지역적 구획에 의해 동북아시아, 한반도, 우리나라 남한만의 고유한 특색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특히 다문화, 다자주의라는 관념이 바로 그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유별나게 발견된 적이 없는 무슬림의 폭탄테러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경계하고, 이민자를 반대하는 의견을 조장하거나, 다자주의의 개념 하에 미소 냉전, 미국의 패권 시대를 지나 갑작스레 동북아시아 지역 연합 등에 대한 논조가 진행되는 한편, 국민 정서상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 등이 진행되는 일련의 세태들을 보면,
'우리나라'만의 문화, 사회적 밈과 충돌되는 '세계화의 추세'가 유별나게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충돌은 꼭 지역적 구획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 흘러들어온 사회적 밈들이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 어색하고 당황스럽기 때문에 발생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외국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교포 등도 남한이라는 지역적 구획에서 일생을 영위하는 우리나라 사람과는 당연히 다른 사회적 밈을 해당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밈은 오로지 지역적 구획을 기준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한편, 범용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는데, 이 범용성이라 함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떤 집단이 공유하는 사회적 현상을 의미한다.
이 사회적 현상은 인간이 야기할 수 있는 무작위적인 수많은 행동들 중, 과반수 이상의 구성원들이 선호하는 공통 분모격의 '행동'만을 이야기한다. (심리는 행동 이후에나 정의되는 것이기에)
이때, '선호'는 곧 해당 행동을 반복하기 쉽거나, 행하기 쉽거나, 해당 행위에 대해 학습하기 쉽다는 등의 여러 사회적 합의(보편적 이유) 등을 통해 정의되는데, 실은 '선호'에 대한 심리, 감성, 감상은 해당 행위에 대한 행동의 자기합리화, 나아가 사회적 구성원들의 공통적 자기합리화의 결과물이다.
이 '선호'가 곧 범용성이 된다. 선호되는 행동은 범용성을 가진 행동이 된다.
다만 둘에는 주요한 차이가 있는데, '선호'는 한 세대의 사람들이 행하기를 희망하는 것에 한정되며, 또한 도덕관념, 법률 등의 사회적 합의, 사회적 밈에 의해 제어될 수 있는 반면, 범용성은 그 행위에 대한 사회적 밈을 배제하고, 단지 그 행위가 일어나는 빈도, 통계적 결과물에 집중한다는 것이 바로 그 차이이다.
예컨대, 2000년대에 80년,90년 등지에 태어난 사람들이 비디오 카세트, DVD, mp3 등을 신문물로 여기고 다니며 선호하였다면, 2010년대를 영위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다 선호한다. 하지만 '범용성' 측면에서 본다면, 스마트폰을 한다는 행위에는 이미 2000년대에 '선호'되었던 비디오 영상 시청, mp3를 통한 음악 듣기 등의 행동이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므로 2000년대의 전자제품 문화와 2010년대의 전자제품 문화는 그 양상이 달라보일 뿐, 문화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하지만 1400년대 말의 조선시대와, 2010년대의 우리나라 문화는 대단히 큰 변화가 있다.
한편으로, 개인의 주관에 대해 제목에 서술하였는데,
개인의 주관은 혼자서 절대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은 그 자체로 주관을 형성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존재이다. 타인이 존재해야 비로소 관측되는 대상인 것이다.
개인이 혼자 명상을 한다든지, 혼자 생활을 일구어나가면서 스스로의 심신의 변화를 깨우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착각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이 혼자서 심신을 단련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과거의 타인들로부터 공유받은 개인의 정체성의 재확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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