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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iness

인터넷 방송 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한가지

 왜 돈이 많은 사람에게 돈이 적은 사람이 도네이션이나 별풍선을 쏠까?

 

 인기 BJ, 트위치 스트리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수익은 적어도 대기업 임원급이 되거나, 그 이상일 터인데,

 

 그 수익이 시청자들의 기부로 이루어지고 있음은 사실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시청자들의 기부로 인해 스트리머가 돈을 많이 벌게되는, 일련의 한 양상은,

 돈을 많이 벌 정도로 유명한 스트리머에게 추가적으로 시청자들이 기부를 더욱 희망하는 사이클로 이어지기엔 다소 비약이 필요하다. 돈을 많이 벌 정도로 유명한 스트리머에게 기부를 할 정도의 매력을 시청자들이 느꼈으리라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있음이 분명한 스트리머에게 왜 그 스트리머보다 돈이 없는 시청자들도 기부를 하고있는 것인가?

 

 심지어 몇몇 스트리머는 그 파편화된 기부 송금 시도들에 일일이 화답하지 않는다.

 

 예컨대, 돈이 있을리가 없을 중고등학생이 어떤 스트리머에게 기부하는 1,000원과, 

 돈이 있을리가 없을텐데도 자신에게 들어온 용돈으로 어떤 스트리머에게 기부하는 자취생의 1,000원과,

 어엿한 직장을 가진 회사원이나 자영업자의 기부 1,000원은 그 의미가 각기 다르다.

 

 요컨대, 1,000원의 기부는 분명 대기업 임원급의 연봉을 받는 스트리머에게는 작은 돈이 분명하나,

 그 1,000원의 가치는 기부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상당히 중요한 의미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묵인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다수의 시청자들 속에서 1,000원은 실상 유명인으로서의 스트리머가 일일이 화답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매장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 대다수의 시청자들마저 방송 화면을 바라보는 2초에 한 번씩 1,000원을 벌지는 못하면서 그렇게 묵인하는 것이다. 그 묵인은 스트리머 좋은 일밖에는 더 되지 못하는 것인데도.

 

 

 여기서 언더도그마를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사회적 부를 점거하고 있는 이는 악인이고, 사회적 부를 쟁취하지 못한 이는 선인으로서 배려받아야 하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나는 보다 근원적인 것에 의문이 간다.

 

 상기한 1,000원에 대한 스트리머의 경제관에 따른 당위적 태도는 더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 이상으로 궁금한 점이 있다. 위에 이야기하다시피, 돈이 있을리가 없을 중고등학생이 도대체 왜 인터넷 방송인, 유명인에게 기부를 하는가?

 

 

 

 연봉 2000만원이 전 세계 인구 대비 상위 2%라는 사실을 우리나라에서는 망각하곤 하는데,

 돈이 있을리가 없을 사람이 인터넷 방송을 보며 보다 돈이 많을 수밖에 없을 유명 스트리머나 BJ에게 돈을 기부하는 행위는 실상 대단히 왜곡된 자본 분배 행위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아프키라에서 굶주림에 고통받는다고 (광고로 알려져있는) 기아들에게 1,000원을 기부하는 행위와, 학창시절 양아치로 유명하였으나 과거 세탁하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아무개에게 1,000원을 기부하는 행위는,

 그 사회적 소요나 사회적 가치에서부터 이미 차이가 극명하게 날 수밖에 없다.

 

 당장 기아로 죽을 수도 있을 사람에겐 한국에서의 1,000원이 국제 환율의 변환 끝에 보다 값진 18만 2981 프랑으로 둔갑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양아치 출신 아무개 방송인에게 1,000원은 오히려 기분 나쁜 기부일 수 있다. 1,000원으로 '유명' 방송인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기엔 '단가'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는 존 스튜어트 밀이나 제러미 벤담은 그야말로 '존나' 어이없어 할 것이다.

 벤담 曰 "야... 이건 좀 아닌데"

 밀 曰 "저 1,000원은 저급 쾌락의 표상이나 다름없다. 하물며 저 1,000원과 대응되는 정량적 쾌락의 가치는 빵 한 조각보다도 못한 것이다. 그 까닭은, 기부 행위로 얻는 도덕적 선의, 자기만족도 해당 방송인, BJ, 스트리머가 유별나게 반응하지 않는 이상 느낄 수 없을 것이며,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없을 뿐더러, 자신이 기부를 했다는 것마저 전자 음성이 '누군가 기부를 했음'을 표현하는 단 5초만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어찌보면 지극히 BJ, 스트리머를 위한 이타적 행위일 수도 있으나, 그 1,000원이 스트리머에게 돌아간 뒤의 기부자(시청자)로서의 기회비용은 막심할 뿐이다."

 

 

 전번엔 어떤 아무개가 '어떤 유명 인터넷 방송인과의 약속'을 빌미로 여러 차례 기부를 한 끝에 '약속'이 무산되자,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었다.

 

 대체 왜??????????????????????????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이나 왜곡된 부의 분배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일까?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면 이해할 수 있겠다.

 유튜브 개인방송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구독자를 기준으로 크리에이터에게 광고료를 지급하는 방식은 거대 기업 및 컨텐츠 생산자 간의 일종의 계약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명확하게 갑과 을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만일 유튜브에서 구독자 수를 기준으로 유튜브 광고료를 배분하는 현재의 맥락을 깨부신다면, 수많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자칭한 이)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현재의 맥락이 그대로 유지될지언정, 현재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자신들을 하나의 독립적인 '법인 회사'로 확대시키지 못하는 이상, 그들이 나이가 들고 중년이 되면 더이상 '크리에이티브'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의해 인기가 떨어지고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e스포츠, 프로게이머들이 겪는 고난과 일맥상통한다.

 

 ......일맥상통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2019년의 양상은 어떠한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겸 방송 BJ, 스트미러 등을 겸업함으로써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한다.

 적어도 유명세가 1년 이상 장기화되면 인터넷 방송에서 자신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층, 애청자, 구독자 등이 알아서 수익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적어도 '크리에이터'보다도 돈을 더 벌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사람들이 그렇게나 기부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분석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놓기는 하였다.

 

$$ 인터넷 방송에 도네이션 및 별풍을 쏘는 이유는, 방송 BJ에 대한 팬심으로 BJ가 잘 되었으면 좋겠단 심리로서 포장될 수도 있겠지만,
실은 해당 방송을 보는 시청자 수가 방송 BJ를 보는 만큼 자신도 같은 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 "방송 BJ가 주목받는 만큼" 자신도 관심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의견으로만 담긴 것을 자기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BJ도 바라봐주고, 또 그와 동일한 수의 시청자가 바라봐주니 그것으로 자기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게 참으로 궁금하다. '자기 표현의 욕구'가 대체 무엇일까?

 

 돈이 없는 사람이 대기업 임원급의 연봉을 가진 사람에게 1,000원, 2,000원 기부를 하면서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고 하니 일단 알겠다.

 그런데, 그 돈이 없는 사람은 타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정치에 관해 논하며 자신의 일자리 걱정을 하고, 연예인들 결혼과 이혼, 스캔들을 걱정하며, 순간 한탕 벌이를 위해 코스닥에서 선물, 옵션을 거래하고, 9급 공무원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욕하고 깎아내리는 괴상한 공무원 열풍에 휩싸여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요컨대, '돈이 없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다. 소득 분위 상 '유명 크리에이터나 BJ, 스트리머'보다도 낮은 분위의 사람 전부를 일컫는 것이며, 이 규모는 가히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대중'과 다름없는 규모이다. 그리고 이 규모의 대중이 할 수 있는 일은 대통령을 뽑고, 어떤 정치당에 선거 우세를 유도할 수 있고, 급반등하고 있는 코인이나 주식과 관련된 찌라시를 순식간에 퍼뜨릴 수 있는 규모이며, SNS 등을 통하여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수도 있는 규모이다.

 

 한편 그 규모의 대중은 출산율 0.9%인 국가에서 아직도 대학교 서열을 매기고 있으며, 정작 취업 전선에서는 '수시 채용'의 바람이 불어 "주식은 도박이고 노동은 신성하다."는 가훈을 지키지 못해 안타까움을 고하는 사람들을 '관망'하며 9급 공무원에 대한 열풍을 도리어 부채질하기도 한다. 하물며 전혀 걱정할 필요 없을 아무개 연예인의 결혼과 이혼 등에 대해 걱정하며, 아무개 연예인의 마이너스 통장과 빚을 걱정하고, 아무개 연예인의 정치관을 걱정하고, 아무개 연예인의 사상과 가치관을 대중의 눈 아래로 잠식하려 든다. 

 

 

 나는 분명, 그 정도 규모의 대중이 기존에 있던 TV 방송들에 대하여 굳이 '기부'할 의욕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어도 2000년대~2010년대 초반에는 그러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당연히 TV 방송사는 개인보다도 갑의 위치로서, 돈을 기부받을만한 어떠한 요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2019년 9월에 트위치 어느 스트리머는 자신의 대리석 깔린 저택을 간접 공개하고, 와이드에, 커브드 디스플레이 TV를 방송 화면으로 보여줘도, 집에 대리석은 커녕 목재를 모방한 장판이 깔린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시청자 김아무개는 여전히 '애청자', '구독자'로서 1,000원, 2,000원을 기부한다.

 그 스트리머의 연봉이 2000년대~2010년대 초반의 TV 방송사 임원급의 연봉임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그 목재 무늬 장판깔린 집에 거주하고 있는 김아무개 시청자는 그 스트리머의 유명세를 단 5초 이용하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현금을 기부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왜 굳이 무시하려 드는 것일까?

 스트리머보다 돈이 없는 시청자들이 기부를 하고 있는 이 현상을 왜 무시하려 드는 것일까?

 

 왜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이 많은 사람에게 기부하고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하에서 자본에 따른 임의의, 심리적, 사회문화적 '계층'이 있음은 이미 언론에서 '중산층'이라는 가상의 인구 구획을 설정함으로써 만천하에 공개된 상황이다.

 그런데, 그 자본에 따른 계층을 그렇게나 지지(직업의 귀천, 대학 서열화, 공무원 열풍 등)하면서도 왜 그에 반하는, '돈없는 사람이 돈 많은 사람에게 돈을 기부하는' 행위에 대해 왜 무시하려 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