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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iness

나의 주관은 내가 만들지 못한다.

 오늘 자기 전에 상상하길, 

 

처음의 나의 주관이랄 것은 없는 것 아닐까 하였다.

 

나의 주관이랄 것은 본래는 없으나,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보며, 가장 적합한 주관(으로 인식되는 것)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당연하게도, 인간 사회와 한 번도 접촉하지 못한 야생아의 경우에는, 야생 동물이 자신을 바라볼 때를 상정한, 가장 적합한 주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도리어 인간 사회에 걸맞지 못한 주관이라 평가받을 것이 자명하다.

 

예컨대 동물 사회에서 자라난 야생아의 주관은 꼭 인간 사회에 놓인 동물의 주관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주관이랄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의 표상으로만 해석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관의 형성은 타인의 시선 및 간섭을 통해 가장 이익이 되는 스탠스만이 남는 것이라 봐야 한다.

 

이는 마치 진화론의 그것과 같다. 주관은 꼭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긴 하나, 교육을 통해 스스로의 주관을 형성한다는 경위 속에는 자신의 자유의지가 보다 작용한다고 하기 보단, 타인의 간섭이 필연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몽유병 중에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를 무작위적 행위들에 대하여, 범법의 행위에 대한 제재가 실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몽유병 중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이는 분명히 범법 행위에 준하여 처벌을 받을만한 사건이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 사례의 특수성은 다음에 있다. 몽유병에 빠져있는 사람이 어떤 주관적 인식 하에 타인에게 상해를 입혔으리라 볼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몽유병에 빠져있는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타인을 상처 입힐 수가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는 꼭 자유의지를 통해 일어나는 것만으로 해석하는 것 이상으로, 타인에 대한 간섭을 반드시 고려하여 해석해야 할만한 것이라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주관이 있은 후의 행동 이라는 경위만이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 것뿐 아니라, 행동이 있은 후의 주관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극단적으로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겠다.

 

1) 인간의 행동의 원인을 자유의지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해체해본다면, 인간의 행동을 어떤 원인이 있어 행동되는 것이라 보지 않고 그 자체로 개별적이고도 독립적인 하나의 현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근원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우주의 탄생인 빅뱅과 마찬가지로 그저 무작위성 하에 놓인 수많은 경우의 수를 포함하는 확률적, 선택적 현상이라 보는 것이다.

 

2) 인간의 행동은 꼭 '인간적인 행동'과 '인간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범죄행위는 인간적이지 못한 행위이고, 그것은 동물적인 행동들이라 평가된다. 중요한 것은, 선별된 몇몇 행위들이 특별히 범법행위로서 분명하게 경고되고 주의되는 행위로서 꼭 모든 청소년과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된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를 교육시키지 않으면 선별된 몇몇 행위들이 실은 범법행위임을 청소년과 어린 아이들이 알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요컨대, 현 상황, 범법행위를 특별히 교육시킨다는 것 자체로부터,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이며, 또한, 범법행위로서 특별히 해당 사회 공동체에서 선별된 몇몇 행위들을 청소년과 어린 아이들이 (그것을 행한 뒤의 자신에게 유형의 보복이 가해질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행동할 수도 있을 가능성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만일 특정 인간 개체가 훗날 어떤 범죄를 벌일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어떤 국가적인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 하에 해당 개체들만 격리시킬 수 있는 사회가 존재한다면, '격리된 사회'가 아닌, '격리되지 않은' 사회 속에서는 모든 형태의 범죄가 분명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은 없으며, 만일 있다고 해도, 해당 '격리된 사회'와 '격리되지 않은 사회' 사이의 중간 관리자들이 범죄자들의 인식을 교육받고, 범죄없는 사회의 선한 사람들을 상대로 얄궃은 범죄를 행할 가능성 또한 존재할 것이므로, '격리된 사회'가 건설되었을 순간에는 기존의 세대로부터 범죄를 모방할 가능성이 있을 개체를 모두 격리하였을 것이므로 '격되지 않은 사회'의 범죄율은 0%일 것이다. 그러나 이후 '격리되지 않은 사회' 및 '격리된 사회'를 교류하거나, 중간 관리직에 있거나, 서로 왕래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격리되지 않은 사회'로 범죄 인식이 유입될 수 있을 것이며, 역으로 '격리된 사회'로 선행, 이타주의 등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격리되지 않은 사회'가 범죄를 인식하게 됨으로써 가지게 될 사회적 파장, 충격보다는 적을 것이다. 왜냐하면, 범죄자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이타주의는 대단히 비효율적인 전략일 것이기 때문이다.

 

 

3) 다만 중요한 것은, 2)에서 서술된 '인간적인 행동'과 '인간적이지 못한 것'은 어떤 선악의 구별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나, 선악이라는 도덕관념으로도 구분할 수 없는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예컨대 하품, 기지개, 걷기 등) 또한 존재함을 유념해야 한다. 이같은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선, 보다 심화된 행동 분류가 존재해야 한다.

요컨대, 인간적인 행동과 인간적이지 못한 행동을 모두 아우르는 '관측되었던 행동' 집합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여집합은 '아직 관측되지는 않은 행동'이다.  

 

 

 

---------졸려서 이만 추후 수정 0825 03:00

 

 

앞으로 쓸 내용1 : 과거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수단이다.

 

앞으로 쓸 내용2 : 현재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주관이 전혀 형성되지 않고 있음을, 정체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