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
혼자 유유자적하며 사는 것.
혼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질 필요 전혀 없이 홀로 만족하는 삶.
그 모든 것들은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왜냐면 혼자 살기에도 벅차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있어서 '혼자'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굳이 이기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혼자 스스로의 편한 삶을 위해 '고립'을 '선택'하기까지 하는 아싸도 이에 해당된다.
어떠한 합리화도 가능할 정도로 사회는 '혼자'에 대해 익숙해져 있다.
그렇기에 누구나가 '나홀로'를 표방하고, 매체에 표상화된 '나홀로'를 격상시키고, 어쩌면 그와 같이 되도록 실천한다.
사실 나도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오고 군대를 지낼 동안의 4년동안 전부 아싸로 지냈다.
그런데, 금일 내가 나무위키에서 우연찮게 본 Tit for Tat 전략은 지적 목마름에 대한 갈증을 대단히 만족시켜 주었다.
TFT 전략은 '첫 판은 협력, 나머지는 따라쟁이'이다. 상대방이 배신하면 나도 보복하고, 상대방이 협력하면 그대로 협력한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로부터 도출된 처세술이라 볼 수 있다.
이 딜레마랄 것은 너무 유명하지만 이걸 까먹을 훗날의 나를 위해 여기에 적자면,
죄수 두 명에게 간수가 말하길,
"너네 두 명 중 한 명이 죄를 자백하면, 자백한 놈은 풀어주고 자백 하지 않은 놈은 10년형이다."
"그러나 두 명 다 자백하면 둘 다 5년형이다."
"만일 둘 다 자백 안 한다고 하면 둘 다 1년형이다."
예컨데 A가 자백을 하면 -> B는 자백을 하거나 (B 5년, A 5년), 자백을 안 한다. (B 10년, A 0년)
A가 자백을 안 하면 -> B는 자백을 하거나 (B 0년, A 10년), 자백을 안 한다. (B 5년, A 5년)
A가 어떤 선택을 하든, B는 자백을 하는 쪽이 더 이득이다. 따라서 B는 이를 알고 배신(혼자 자백)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할 때, A는 이 사실을 분명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A와 B는 똑같이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위치로부터 B와 정확히 같은 이해당사자이고,
위의 추론으로부터 B의 행동에 따라서도 A도 배신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이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A와 B는 모두 합리적인 개인 의사결정을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둘 다 배신한 게 되어 5년형을 받는다.
이는 개개인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가 공동체(A와 B)로서는 손해가 된다. (그리고 그 손해는 개인에게 다시 또 영향을 미친다.)
A가 B가 무얼 할 지 고민하는 것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여기서는 '개인이 분명 합리적인 판단을 했는데도 공동체로서는 손해를 입는 상황'을 딜레마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A와 B가 서로 비슷한 선택권, 선택지를 갖는 이해당사자이고, 딱 1회만 선택권이 있다는
2가지 전제가 있었기에 나온 결과이다.
이를 응용해 IPD 실험 (죄수의 딜레마 반복실험)을 하게 되면,
즉, A와 B가 이 문제를 100번이고 1000번이고 선택을 하게 된다면,
어떤 처세술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나타낼 수 있다.
말인 즉슨, 과연 단발성으로 끝났던 위의 문제를 100번으로 늘린다면(A와 B가 서로 양방향으로 100번이나 마주본다)
그 때에도 AllD (모두 배신-자백하는 걸 처세술로 삼음) 전략이 유효할까?
결과는 아니다.
최초 1회 단발성으로 A와 B가 같은 문제에 놓였을 때에는 배신(자백)이 가장 합리적이지만,
그 횟수를 늘리면 A와 B는 'Tit for Tat' 전략이 가장 합리적임을 시뮬레이션으로서 알 수 있다.
즉, 최초 1회에는 협력(침묵)을 하고, 이후에는 상대의 처세(협력이냐 배신이냐)를 그대로 다음번에 따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된다.
IPD 실험은 죄수의 딜레마 실험을 토대로 '점수 벌기 게임'으로 바꾼 것이므로, 정확히 협력=침묵, 배신=자백 으로 대응되지는 않는다.
다만 중요한 점은, 처세술 중에는 AllD (모두 배신), 상대의 과거 전적(몇 번-전체 중 몇% 협력/배신을 했냐)를 보고 판단하는 처세술,
Tit for Two Tat (한 번의 배신은 실수로 봐주고 두 번째 배신에 대해서만 보복하는 것),
Gradual (배신한 횟수를 기억하여 추후 배신했을 경우 똑같이 배신으로 갚아주는 것, 예컨데 3번째 배신 때에는 3번 연속 나도 배신),
Operator (무조건 협력) 등의 처세술이 다양하게 나왔음에도
그 모든 것들에서 Tit for Tat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다만, Gradual의 경우 특수한데, AllD를 제외한 경우, Tit for Tat보다 우세하였다.
또한, Tit for Tat을 제외하고 AllD도 안정적인 점수벌이를 할 수 있는 처세술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여하튼, 이런 처세술(사실은 딜레마 게임을 하는 코딩 프로그램일 뿐이지만) 중 TFT로부터 얻는 의의는 2가지이다.
1) 최초에 협력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득을 얻는 데에 좋다.
2) 그러나 상대가 배신했을 경우에는 그와 동등한(혹은 살짝 작은) 보복이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이는 도덕성, 선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응징도 포함되며, 추후의 협력을 위한 자비도 포함이 된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처세술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현실은 A와 B 단 둘뿐이 이해당사자인 경우가 매우 적고, 당사자 간의 경제적 위치, 영향력 등에서 차이가 남으로 인해 '보복'이 가능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고, 선택 횟수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A와 B가 서로 양방향 결과를 얻는 어떤 선택을 한다는 이야기는,
양방향 소통을 한다는 점이 결여되어 있다 한들, 양방향으로 영향력이 미침은 자명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방적인' 영향력을 받거나, 일방적인 소통을 받는 경우가 존재한다.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나홀로'는 위 중 '양방향'이 결여된 상황을 이야기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립된 개인'은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어떤 선택지가 오는 횟수가 줄어들 뿐더러,
경제적 위치가 의식주를 보장받기 힘든 경우에서는, 선택권조차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또한, 양방향으로 결과를 얻는 이해당사자가 많이 얽혀있지 않다는 점 등을 보자면
Roughly하게, 위에서 이야기하는 'IPD 실험에서의 선택지'에 대응되는 '인생의 여러 선택지들' 속에서
TFT 전략을 수용할 가능성이 낮고, 되려 단발성 선택지들에 합리적인 AllD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이는 곧 긴 시간동안 고립된 개인은 '협력적이지 못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는 에둘러 말해 '협력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지만 이는 분명 도덕과 법적 제약에 관련된 문제이다.
졸려서 덤만 쓰도록 한다.
위에서 나오는 불신의 까닭은 서로 간 상호작용하는 횟수가 적으면 '불신'이 많아져 AllD 처세술이 많아진다는 이야기였다.
이외에도 불신을 조장하는 요소는 두 가지가 더 있다.
1)협력의 보상이 적다고 생각할 경우 -> 사회엔 제로섬 게임이 대다수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손해보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경우
2)상대방의 이력 속에서 나온 배신들이 진의가 아니라 '실수'였을 경우도 있는데,
이 실수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나오게 되면, 당연히 불신이 생기게 된다.
(이는 실제로는 무한한 자비심을 가진 Operator로서 사는 사람에 대해서도 불신하여 배신하는 경위를 만들어낸다.)
-수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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