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당황스러웠던 사실 하나는, "게임 회사 임원들의 자녀는 그 회사 게임을 많이 안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생선집 가게 자녀가 생선을 자주 안 먹는다는 식의 논점과는 사뭇 다르다. 생선을 먹음에 있어서 포만감은 사람 개인별로 한정적이고, 따라서 누구든지 인생을 갈아넣을 정도로(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생선을 먹으려 하는 등 생선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게임은 캐릭터의 육성에 있어 그 한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우회하여 사실상 끝없이 플레이어를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포만감과는 다르다. 게임에는 절대 포만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포만감은 자체적인 생리적 한계를 따르지만, 게임에서의 포만감(충족)은 오직 다른 유저와의 무한 경쟁(브론즈, 실버~~다이아 등등)에서 승리하거나, 혹은 개발자가 유도한 어떤 심리적 마지노선(어떤 보스를 깨야만 상위 n %에 들 수 있다는 등의 '랭크' 제시)을 뚫어야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플레이어들은 그야말로 한없이 게임을 갈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현실에서 이기지 못하는 누군가를 게임 속에서나마 이길 수 있는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현실에서의 시간과 돈과 같은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플레이어들의 노력은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듯이 무의미하며(항상 다른 경쟁자를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며, 또 개발자가 제시하는 심리적 마지노선은 언제든지 업데이트 될 수 있다), 게임에 심취하면 할수록 자신이 수행해야만 하는 현실 과업을 놓치면서도 게임 회사를 위해 자기 삶의 윤택함을 줄여나가는 숭고한 희생을 자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가난한 백수가 특정 게임에서 어마어마하게 강한 기술로 보스를 때려잡는 등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인생을 갈아넣을 정도로 게임에 집중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인 반면, 그 게임 회사의 임원들의 자녀들은 현실에서 만족을 느낄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고, 따라서 그 게임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게임에 인생을 갈아넣으려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바로 게임 플레이어로서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야 할 점이다.
요컨대 게임 회사 임원들의 자녀는 그 회사 게임을 한다손 치더라도 어느 가난한 백수처럼 몰두하지는 않으며, 해외 유학 등을 통해 어마어마하게 강한 스펙으로 취업문이나 대학원 문을 통과하는 등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성적인 동물이라면, 오히려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자기계발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 몇몇 사람들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더 게임에 빠져서 현실을 잊으려 했다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만일 합리적으로, 가난한 백수가 자신이 하는 게임에 투자한 시간만큼 그 게임 회사 임원 자녀들처럼 자기계발을 하였다면, 진작에 그 게임 회사에 취직하기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월급으로라도 보다 수월하게 게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가난 역시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기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면 그 백수는 매일 게임에서 일일 퀘스트를 통해 조금씩 스펙업을 해야 하며 기간 한정인 이벤트를 위해 몬스터를 때려잡아 얻는 전리품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PC방에서 몇십 시간을 채우면 받을 수 있는 보상을 받기 위해 PC방에 월세까지 내며 게임에 인생을 갈아넣기도 한다. 이는 실상 소작농과 다를 바 없는 행위이다. 지주인 게임 회사가 게임이라는 판, 플랫폼을 깔아놓으면 외거노비처럼 일을 하러 들어오는 백수가 존재하며, 심지어 게임이 자신에게 즐거움이라는 대가를 한없이 준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일일 퀘스트 등의 노동을 자발적으로 하면서도 현실에서 천 원도 되지 못하는 가치에 감동하며 지주에게 유의미하게 캐시 등을 통해 소작료를 내준다는 점에서 당황스러운 일이라 아니 말할 수가 없다. 실제로도 모든 종류의 소프트웨어는 다운로드 하면서부터 라이센스 계약서 등의 안내가 이루어지는데, 게임의 경우, 어느 한계 이상으로는 훗날 플레이어가 잠정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세 소작농과 큰 차이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수가 아니더라도 중고등학생 단위로 이런 일은 당연히 일어난다. 게임 회사 임원들의 자녀는 이미 충분한 재원을 활용하여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업 성취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으며, 해외 유학으로 올라서는 길도 쉽게 밟고, 또한 실제로도 학업 이해도, 논문 성과 역시 일반적인 학생보다도 우수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매우 당연한 것이, 그만큼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이때 일반적 계층의 학생이 다니는 학교(남고 기준)에서 일어나는 일은, 맨 뒷자리는 어려서부터 YOLO에 인생을 갈아넣은 일진이 있고, 맨 앞자리에는 "친구보다도 성적이 너의 앞길을 비춰준다."고 학생부장 선생님 내지는 부모님에게 세뇌 받은 학업 우수생이 있고, 이 우수생들을 위한 학교 단위의 경시대회, 공모전 등에 꽂히지 못하는 일반적인 중위 계층의 학생들이 있다. 특히 이 중위 계층의 학생들은 적어도 남고라면, 성적이 아닌, 또래에서 유행하는 게임을 기준으로 농담을 하며 친구를 사귀는 행위에 몰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때 중위 계층에서도 성적으로 나름의 서열이 나뉘어지면서 '사귈만한 친구'가 가려지고, 그 반대급수로 게임을 잘하는 사람 역시 '사귈만한 친구'가 되기 때문에 성적으로 날아오를 수는 없다고 일찍이 판단한 이들은 게임에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기 시작한다.
그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게임에 갈아넣는 시간동안, 그 게임 회사 임원 자녀들은 충분히 투자를 받은 끝에 괄목할만한 학업 수행 능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으며, 그 게임 회사 임원 자녀들이 자신의 회사 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인생을 걸어버린 일반 학생들의 경우, 그 게임 회사 임원 자녀들보다도 레벨도 높고, 더 많은 킬을 따낼 수 있거나 더 많은 보스를 잡을 수 있음에도 그 성과를 단지 그 게임 유저들에게만 자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 그 게임 회사 임원 자녀들은 현실에서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현실적 성과를 올릴 수 있고, 이는 스펙이 되어 대학 입시나 취업에 대단히 유효하게 작용한다. 심지어 스펙을 쌓지 않았어도, 이미 작용하고 있다. 이는 분명 주지할만한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향 평준화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게임 회사 임원 자녀들이 그 게임을 백수처럼 몰두해서 게임 회사 개발진들에게 피드백을 해줄 이유가 하등 없다. 전혀 없고, 불필요하기까지 하다. 이때 주요 해결책은 이 괴리를 학생이나 백수 자신이 깨닫는 것이다.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일퀘스트나 이벤트 기간 한정 모아야 하는 전리품 등이 자신의 앞길을 밝혀주질 못한다. 왜냐하면 그렇게나 게임에 인생을 갈아넣어 보았자 시급 1000원도 모으지 못하는 채로 영영 백수로 살아갈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진정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약관에 동의한 것인지, 대가없는 근로 계약 내지 소작농 계약에 동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내 장담하건데 게임을 취미로만 즐기는 것에는 어느 한도가 있으며, 그 한도를 넘어서면 무조건적으로 게임 역시 노동이 된다. 어느 한도 이내에서의 취미 수준의 게임은 당연히 바람직한 취미이지만, 그것을 긍정한다고 하여 한도 초과, 노동 수준의 게임까지 옹호하는 것은 그저 자신이 게임에 투자한 시간과 돈 등의 매몰비용이 아까워서 관성적으로 옹호하게 된 것과 다름 없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 봐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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