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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청소년기는 10년, 노년은 40년인데, 세상 모든 것이 청소년기에만 맞춰져 있지 않나

 훗날 찬란함의 봉우리를 터뜨릴 준비를 하는 청소년들에 대해 한없이 경외로움을 느낀다.

그 이야기를 하는 나는 24살이지만, 지속적인 노화로 인해 나는 나의 나이를 종종 망각해버리곤 한다.

나의 나이를 계속 망각하는 와중에도, 내가 취업할 수 있는 제한 시간은 날로 다가옴을 느낀다.

단적으로 말해 돈이 나의 인생 향방에 너무나 큰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문직 시험을 준비할 수도 없고, 준비해서도 안 되는 사람임을 나는 기나긴 자아성찰 끝에 알게 되었다.

지나간 나의 무의미한 청소년기를 되새겨보며 나는 '청소년기'라는 이미지를 주입받는 그들의 가능성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느끼기만 한다.

도저히, 그때처럼 또래 사람들과 함께 객기를 부리며 무언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걸고 할 수 있을만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책임감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만큼 무서운 게 또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렇기에 젊은 날의 혈기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책임감의 무게에 뇌가 짓눌리지 않는 아무개라면 응당 자신이 원하는 길 그대로를 당당히 걸어갈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전 사회의 모든 트리거들이 청소년기에 집중되어 있음은 계획적인 것이라 보아도 되겠다.

 가능성을 펼치게 하기 위해 청소년기에 인생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개념적인 무언가(이미지일 뿐이나)를 퍼뜨린 것은 충분히 계획적으로 합리적이라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취업 가능한 나이에 상한이 있는 반면, 때늦은 평생직장, 평생직장을 몇십 년째 이야기하며 강물 흐르듯이 모두가 똑같은 책, 똑같은 진로, 똑같은 직무를 그린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적인 일임을 느끼기도 한다.

 실상, 똑같은 강물을 따라 흐르듯이 누구나가 바라는 진로를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갈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 명분이 없는 채로 개인주의 사회를 넘어 이젠 뉴노멀이 되어 아예 교류의 한 축을 온라인이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지독한 일이라 느낀다.

 온라인이 사람의 덕을 표현하는 하나의 축이 되면, 사람으로서의 면면은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온라인 상의 덧없는 이미지들에 더 큰 사회적 가치가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OO 유튜브 캐릭터는, 한순간의 마케팅을 통해 일반인 한 사람이 평생 벌어도 닿지 못할 정도의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사람 한 명의 인생분이 조회수 5억뷰의 동영상 광고단가보다도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 점이 중요한 것이다. 예전과 같았다면, 어마어마한 제조업 제품을 혹은 생산 설비를 마련하여 마케팅을 하고, 물류를 통해 돈을 벌거나, 근래와 같이 인터넷 사이트 도메인 하나만으로도 돈을 벌거나, 온라인 플랫폼 하나 정착하면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이제는 개인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하나가 몇십 명분의 인생을 갈아넣어도 닿지 못할 돈을 벌어다 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청소년기'라는 단어 하나가 트리거가 된 사회에서, 예전과 같은 정석적인 루트대로 돈을 벌기는 좁아졌음에도, 그 짧은 청소년기의 '성공'을 쟁취하지 못하는 이상 40년, 50년 60년이나 나이를 먹어갈동안 '개인'으로서 무언가를 창출할 기회가 현격히 적어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깨달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눈뜨고 주름살에 자신의 삶이 갈라짐을 느끼게 될 것이 자명해졌다는 것이 참으로 통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