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세상 놀라운 일도 많고 감명 받을 그림, 음악은 또 얼마나 많나. 그 하나하나에 자신의 미래를 걸어버리고 후회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나.

 세상 놀라운 일도 많고 감명 받을 그림, 음악은 또 얼마나 많나. 그 하나하나에 자신의 미래를 걸어버리고 후회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나. 

 

 나는 그 한 순간의 이미지들에 현혹되어 지난 인생 전부를 내걸며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현실을 주욱 직시하며 고난을 걸어갈 것이다.

 태어남에 있어 나의 육체는 에너지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 어떤 철학적인 관점을 들이대어도 나의 존재성은 그저 한 순간의 이미지들로 가득차있는 동적인 system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리라.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상견도,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단견도 그르니, 나는 중도라는 가상선을 향해 나아가는 이미지의 집합체일 뿐이라 정리할 수 있다.

 

 가상의 선, 누구나가 이야기하는 자신만의 선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 선은 정신적인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그 시대에 유행할 뿐인 인기 상품이 곧 도덕이며 법률일 뿐이다.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고정된 것은 없다. 하물며 나는 어제와 오늘 매번 다른 나를 만나고 있다. 그 사실을 눈치채어라.

 

 이 세상 수많은 아름다운 그림과 듣기 좋은 음악들에 일일이 화답할 필요없다.

 그 수많은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음이라, 그저 보고 싶을 때 보고, 듣고 싶을 때 들으면 된다.

 반드시 하나의 장르, 테마만이 나의 취향을 결정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2시간 전의 나와 다르다.

 듣는 음악의 장르가 달라지면 나도 달라진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교양적이고 이지적인 나의 모습과, 숭고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 찬송가를 듣는 나의 모습과, 명색의 공을 그리며 반야심경을 듣는 나의 모습과, 한껏 흥분한 채로 클럽 음악을 든는 나의 모습과, 불안감에 빠져 모든 것의 공허함을 역설적으로 부르짖는 데스메탈을 듣는 나의 모습은 분명 다르지만,

 분명 다르지만 그 이미지의 중첩된 모습인 나는 하나로 귀결된다.

 오늘날, 유튜브 덕분에 클래식, 찬송가, 반야심경, 클럽 음악, 데스메탈 음악을 순서대로 한 곡씩 띄엄띄엄 듣는 데에는 2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 2분이란 시간동안 나는 무려 5번이나 바뀌었다.

 말인 즉, 나는 이미지의 중첩이고, 각 상황 사건에 대응될 뿐인 대외용 이미지의 도출로써 관측될 따름이다.

 

 나는 2분동안 5번이나 바뀐다. 1분동안 10번도 바뀔 수 있다. 내가 단어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적는 0.5초만에 한 번씩 더 바뀔 수도 있다. 말인 즉, 나는 음악의 장르를 바꾸어 들으며 5번 바뀌고, 지금 이 글을 쓰며 0.5초만에 한 번씩 더 바뀌니 같은 시간(2분)동안 240번도 더 바뀐다. 그러니 내가 2분동안 중첩하게 된 이미지는 1200개나 된다.

 

 내가 2분동안 5번의 음악을 바꿔 듣고, 자음과 모음을 키보드로 적는 데에 0.5초가 걸린다고 할 때에 2분만에 나는 1200개의 이미지를 내포하게 된다. 그 1200개의 이미지 중 한 가지를 나는 관측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무엇이고 될 수 있고, 다만 모든 것은 될 수 없다. 나의 관측 결과물은 단 한 가지에 국한되지만, 내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무한함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