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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iness

돼지의 왕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 중 어느것을 탐할지 정하는 것은.. 여느 돼지도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심지어 돼지라도, 뱀의 머리든, 용의 꼬리이든 무엇이든 목표를 정했다면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나갈지 미래의 계획을 세세하게 정할 수 있다.

 진정으로 뱀의 머리든, 용의 꼬리든 될 수 있는 이는 그 계획들을 실천한 사람뿐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돼지에 머무르는 이는 다른 돼지들에게 관심받기만을 좇는다. 목표고 계획이고 머리로는 알지만, 도저히 실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의 이득만을, 당장의 자극만을 탐하는 돼지의 여흥에 어울린다. 심지어 돼지가 아닐 수 있었던 이도 돼지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왜냐면, 농으로라도 모든 이들이 돼지의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뱀의 머리, 용의 꼬리를 넘어 용의 머리를 자칭, 타칭하는 이들에게도 돼지같은 면면이 존재한다. 어디까지나 직위, 직책은 시뮬라크르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인 즉, 누구나 돼지로 살다 뱀이 되고,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듯이, 사람이 어떤 직책, 직위를 갖는다 하여 그 사람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돼지임을 인정하자고 공표했던 것은 곧 차별을 없애기 위한 선언이었을 따름이다.

 다만 오늘에 내가 안타까운 점은, 내 자신이 지난 20 몇 년간을 돼지의 삶에서 벗어나질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돼지로 살고 있음이 당연한 듯 하였고, 마음 속 한 켠에는 용의 꼬리가 되고자 하는 야망을 갖고 살고 있다 자부하였다.

 그런데, 나는 오늘까지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돼지였음을 깨달았다.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행복해지고 기쁨을 나누고 애로사항을 없애나가고 같이 나아가자는 그 모든 생각 속에서, 

 돼지로서의 여흥을 위한 것들이 단지 대부분이었음에 나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고귀한 용이 될 수 없음을 수능에서 배웠다고 할지라도, 어째서 뱀이라도 될 수 있었을 그 수많은 기회들을 밟아버리고 있는가?

 나는 돼지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한다 해도, 그래도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닌가?

 설령 나의 발전을 보여주고 평가해줄 사람이 없다 한들,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나 자신의 시야, 판단, 가치관, 미래의 계획이 모두 존재하지 않았던가?

 어째서 나는 돼지들의 관심을 갈구하고, 그렇게나 좇으며 특히나 지난 45개월을 낭비하고, 지금에 돼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하여 우울해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돼지이기에 돼지들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망도 있으나, 동시에 뱀이라도 되고 싶다는 야망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나?

 왜 나는 그 모든 나의 가능성과 기회를 스스로 마다하면서 여전히 돼지로서 부패해가고 있는 걸까

 그야, 저마다 작게 나뉘어진 집단들 속에서 돼지들의 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돼지의 왕이 있음으로 하여금 돼지들의 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용과 같은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돼지들의 관심을 끄는 것만으로 돼지의 왕이 된 자는 구태여 용이 될 필요없음을 설파한다.

 구태여 용이 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다. 그런 사회인 것이다.

 그렇게 돼지의 왕은 자신의 지론을 역설하고, 돼지들은 그것에 혹하여 벌떼처럼 몰려다닌다.

 돼지들 저마다 자신의 용과 뱀이 되고자 했던 과거를 잊고 돼지로서 자신의 인생을 망각해가는 것이다.

 하루 대신 이틀을, 이틀 대신 한 달을, 한 달 대신 앞으로의 1년을, 앞으로의 1년 대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고귀한 지성을 애써 망각하고,

 돼지의 삶으로서 당장의 10초, 당장의 1분, 당장의 10분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돼지의 왕에게 혹하여 지난 45개월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돼지의 왕에게 혹하여 지난 288개월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 아니었을까?

 나는 돼지의 왕이 되고 싶다는 망상에 빠져 나 또한 돼지의 왕의 심부름꾼 역할을 자처하지 않았던가?

 나는 돼지인 지금 이순간, 내가 돼지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 20년이 걸렸다는 사실에 도저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내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많이 짧아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많이 짧아졌다.

 내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많이 짧아졌다.

 내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많이 짧아졌다.

 내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많이 짧아졌다.

 내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많이 짧아졌다.

 내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많이 짧아졌다.

 내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많이 짧아졌다.

 

 돼지의 관심을 끈다 하여 그것이 같은 돼지인 나에게 과연 도움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