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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iness

역겨움

 학벌은 무임승차자들의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고등학교 때까지의 공부를 열심히 한 이들이 좋은 대학교에 가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훌륭하다.

 

 다만 학교의 이름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한해버릴 때, 문제가 발생한다.


 좋은 대학교에 간 것은 정말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며, '입시결과'로 통칭되는 대학 간의 배치표는 


 예전 세대가 그러하듯, 지금의 세대도 무시할 수 없는 정보이다. 학생으로서의 성실성을 대표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의 변화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자신이 보다 수능 점수가 높은 대학교에 가고자 하는 바람이 일었다면, 수능을 다시 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수능을 다시 봄으로써 성적이 올라가든, 내려가든 결과가 어떻든 책임은 자신이 진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라는 전제 하에

 수능을 다시 보는 행위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수능을 봐서 보다 좋은 대학교를 가고는 싶지만 수능을 열심히 공부하기는 귀찮고, 그렇다고 그냥 다니기에는 싫다고 느끼는 것은


 그저 어리광을 피우는 것에 불과하며, 이는 수능을 다시 보기 위해 다시 1년간 칩거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자만이고,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그렇게 느끼는 자들의 특질은, 수능이든 전공 공부이든 대외활동이든 어느 하나에 흥미 붙이지 못하고 겉돌다가

 

 대학교 1학년을 지나고 위기감을 느끼고 2학년 때 어떻게든 편입이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나 골똘히 생각만 하다가


 2학년을 어려운 전공 공부에 휩싸여 숨이 턱 막힌 채로 편입은 생각도 못하고 3학년으로 진학, 이때껏 이뤄놓은 자신의 포트폴리오 하나 없이 그저

 

 갑자기 자신이 이 대학에 온 것에 대해 가졌을 후회, 수능을 보고자 하는 고민 등은 모조리 잊으려 한 채 남들 따라 토익이나 공부한다.


 남자에 한해 군대를 가서 수능 준비를 하든, 편입 준비를 하든 뭐라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입대 신청을 하지만


 공군이나 카투사가 아닌 이상 육군으로 온다면, 이하 생략



 나는 군 전역을 하고 허리디스크와 무릎 힘줄 염증이 생긴 것을 minus라 치면 그림 그리는 취미를 Plus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그 그림 그리는 취미에 대해서도 이미 자신감을 잃고 지금은, 말출 때 야심차게 샀던 타블렛을 어떻게 하면 중고로 팔 수 있나 골똘히 생각이나 한다.


 군 입대 전, 군 생활, 군 전역 후, 복학 전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나는 군 입대 이전에 가졌던 공부, 수능 회한 등에 대한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당장 지금에 내가 진학한 대학교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는 수동적인 마인드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지금 자신은 수능을 다시 볼만큼 자신은 없고 편입 준비는 막막하며 그저 전공공부나 하자고 전공책을 폈더니


 원서 압박은 물론이요 그래도 읽힌다 하여 예제를 풀지는 못하고 그대로 따라하다가 연습문제를 바라봤을 때 막막함만 느낀다.


 혹자가 이야기했던 '대학원' 입학에 대한 고민을 하는 척 하다가 하이브레인넷에 가서 충격을 받고 멍해 있는다.


 이 상태에서 하는 행동은, 자신의 대학교 이름이 어느 정도의 입지를 가지고 있고, 학벌로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검색하는 행위다.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과거의 내가 쌓아올렸던 공든 탑인 대학교가 그래도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며


 자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간신히 대학교에 들어왔으면서 그 이름만 믿고 그대로 취업이나 중요 시험, 고시에 합격하려고 하는 것은


 무임승차와 다름 없다.  


 고등학생 때까지의 공부를 과연 자신의 온전한 공부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부모의 투자가 만만치 않다.


 대개 그렇다는 것이지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충분히 홀로 열심히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학교에 와서도 아직도 수능이나 편입이나 하는 것들에 얽매이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의 자립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역량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외적인 면에 집착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의 대학교가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업그레이드해줄 수는 있어도 상품의 질적인 면은 생각하지 않는 모습, 기업 입장에서 보면 반품할만한 일.


 그렇다면 이러한 이를 설명하자면 이렇게 될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의 자본력에 기생하는 식충이로서 살다가 요행으로 (자신의 실력보다) 좋은 학교에 입학한 것까지는 좋아도


 정작 자신의 본인 실력은 까맣게 잊고 다시, 보다 더 좋은 대학교를 갈망하면서도 전공책은 하나도 공부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며 겉도는 행위는


 이후 자신이 취업을 하든 대학원에 가든 하는 모든 면에서 결국 자신은 무임승차할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원마저도 학벌로 여기며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사람이 있을 터인데,


 학교의 이름, 내집단의 특질을 기대하며 무임승차한 끝에 가시방석에 앉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자신이 후일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자신이 쌓아올린 포트폴리오만을 5년이고 10년이고 죽을 때까지 그대로 써먹으려 하는 행위,


 그것이 어떻게 무임승차와 다를 바가 있을 것이며... 어떻게 그만큼이나 실속없고 쓸모없는 식충이 따로 있을 것인가?


 이건 모두 나 자신의 모습이다..


 필자인 내가 떠올렸던 모든 생각이다.


 나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끝에 시험 보기 전에 공부도 하지 않고 


 우선순위도 망각한 채 그저 나중의 취업을 할 적에 내가 학벌로 무시받는 일은 안 생길지 걱정하면서


 인터넷에 '~~대학교 학벌'이나 치면서 그저 댓글로 "아 그정도면 마지노선임"하는 반응을 보며 자위하는 꼴,


 그 꼴을 보인 지 단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까지 추해진 끝에 도달해서야


 그 모든 것이 그저 꿈에 불과한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전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브랜드 가치라는 말로 대학교나 들먹이고 있었다니, 학교가 부끄럽고 민망해할 것이다.


 부모님이 부끄럽고 민망해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식충이에 불과한 것이다.


 아직도 부모의 품, 대학교라는 이미지, 선배들이 들어갔다는 대기업, 소수의 선배들이 들어갔다는 기술고시 등의


 광고와 홍보에 의존한 채 스스로의 위치, 스스로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지 않고 그저 침만 흘리며


 낮에 깔짝 학교 갔다가 트위치나 보는 이런 양상,


 어느 누가 좋아해줄 것이며 참다운 의미 있다 생각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편입을 또 꿈꾸는 나 자신의 모습은 정말로 어리석다. 휴학을 하면서까지 편입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자만이고...


 열심히 학과 공부하여 과탑을 유지하여 자신이 원하는 역량에 다다르는, 포트폴리오를 빈틈없이 써내려가는 성실한 이에 대해


 열등감도 갖지 못하여 그저 학교 자체를 스스로 낮추어 보는 것은 주변에 보이는 모든 이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기저로 인한


 우월의식밖에 남지 않는 모습,



 정말로 스스로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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