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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iness

어제 할 일을 미룬 끝에 도달한 오늘

 나는 6월 7일날 오후 3시 40분, 자격증 시험이 하나 있었다. 

 상시시험이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고는 하나, 가격은 2만 2천 원으로 간단히 버리기에는 다소 곤란한 시험인 것인데.. 나는 그 시험을 신청해놓고 여태껏 미루어 오다가 급기야 시험장을 안 가는 선택을 했다..

 내 인생을 살면서 이러한 적은 처음이다. A4용지 500pg 분량의 수업 내용도 이틀 안에 외운다고 자부하였는데, 글쎄 이 시험은 그렇게 간단히 볼만한 양이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오늘 다른 사람들이 한 달~ 세 달은 준비해야 한다는 시험을 어제부터 지금 15시간동안만 준비하였다.

 밤을 샌 지금에서 드는 판단으로는, 딱 50%의 분량은 어느정도 이해하였다고는 감히 생각하는데, 도저히 추가로 3시간만에 액세스를 공부할 시간이, 기력이 없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액세스를 보면서 과연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벼락치기 인생이 산산조각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타인이 보기에는 쉬운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 난생 처음 보는 것을 단 3시간만에 심지어 실기 시험을 과락없이 통과한다고 믿는 건 정말로 허무맹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필기시험을 통과했던 2월 이후 지난 4달동안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는데도, 나는 단 하나도 오늘을 위해 준비하지 않았다. 스스로 고통스러우리만치 피부를 긁어댔는데도 겨우내 시험이 하루가 다가와서야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아! 사람은 참으로 변하지 않는다.

 실은 이 실기 시험도 일주일 전에 이미 봤어야 했던 것이었다. 과제와 함께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받아서 정말로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마치 수강신청 하듯이 상공회의소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리며 일주일 뒤의 자리를 예약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나는 그저 '미루기만 했다'..

 시간 여유가 생긴다고 하여 그만큼 행동에 나서리라는 보장이 없다.

 딱 이 말이 오늘 시험장 가는 것을 포기하고 목욕을 하면서 들게 된 생각이다. 시험이 일주일 미루어졌다고 할지라도 끝끝내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안 하고, 벼락치기하는 사람은 여전히 하루만 남기고 벼락치기를 한다. 여태 꾸준히 해왔던 사람은 마침내 100점을 이루는 쾌거를 달성하고, 벼락치기만을 반복해온 사람은 인생의 무게감에 짓눌려 언젠가, 오늘날의 나와 같은 지독한 패배감을 느끼게 되니, 나는 내 앞날의 미래 속에 더이상 오늘과 같았던 나를 벗어 던져야 함이 자명하다..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사실, 오늘 내가 시험을 보러 가지 않는다고 선택한 것도 심신에 다소 무리가 가는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그 판단은 현실적이다. 가보았자 교통비만 날릴 것이 당연하다.. 아!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수준까지 내몰리게 된 것인가, 시험을 신청해놓고 정작 당일날에는 아예 안 가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자위하는 꼴에 놓이게 되다니...

 시간 여유가 생긴다고 하여 어제의 내가 미래에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 더이상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벼락치기가 가능했던 건 학생 때 뿐이다. 지금 학생 때의 말미에 이르러 내가 채워야 할 밥그릇이 점점 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이상,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메우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의미냐? 바로 스스로에게 심신 고문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함부로 정신을 놓지 않고, 강제로 의식을 각성하여 두 눈 뜨고 잘 때까지 책을 보도록 스스로 고문이라도 할 것이다. 실은 이 자격증 시험이 있던 오늘로부터 정확히 4일 뒤부터 전과목 시험 범위의 기말고사들이 무수히 준비되어 있다. 나는 그와중에 괜시리 자격증 시험이고 뭐고를 논하며 스스로 점잖 빼다가 오늘 아예 정신이 나가버리게 된 것이니...

 앞으로 기말고사는 4일밖에 남지 않았고 이제 연달아 커피에 내 뇌가 찌들어질 시간들만 준비되어 있지만, 나는 기어코 그 불면의 고문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늘 내가 지닌 극도의 나태함을 부끄러워서 망각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