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가식을 논할 필요가 없다. 가식 웃음을 조롱하는 아무개의 낯빛이 가식 웃음보다도 밝던가?
가식으로 웃어야 함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순전히 당신에게 맞춰주기 위해(내 향후 안위에 문제 없도록) 웃을 뿐이다."라는 감성에 혼자 몰입하는 건 실상 스스로의 망상일 뿐이다.
웃는 그 순간에 타인의, 자신의 낯빛만을 바라보라. 그 순간에 자신은 이미 남이 보기엔 웃고 있는 것과 다름없고, 그 순간의 화기애애함은 훗날 인생 말미에 몇 년동안이나 홀로 지낼 순간에 그리워 할 기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접속사, 구에 자신의 정체성을 걸지 말라.
이 세상 어디에도 까닭없이 관계를 맺는 이 없고, 까닭없이 남에게 자신을 보이는 일 없다. 온 세상 자신에게만 "하지만, 그런데, 어쩔 수 없이"라는 문구가 붙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건 자신만의 비대한 정체성 때문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한 '개개인의 사정'은 온 세상 누구에게나 있다. 나보다 더 한 사람이 훨씬 많다.
나보다 잘난 놈은 하늘 아래 수없이 많고, 나보다 못난 놈도 땅 끝 깊이를 모르고 많이 있다. 나는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아닌 그저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을 흘려 보내는 관찰자일 뿐임을 환기해야 한다.
웃고, 울고 하는 자신의 표정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 표정이 만들어진 까닭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표정은 그 어떤 대화 수단보다도 직접적이고 인류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누구에게나, 심지어 동물에게도 통하는 대화법이다. 그 대화 중 대표적인 것은 웃음 혹은 울음 등이 있다. 그 인류 공통의 대화를 건네는 데 앞서 자신만의, 개인만의 이유, 까닭, 당위성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 표정은 모두에게 읽히지만, 내가 그런 표정을 짓게 된 까닭에는 누구도 공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순간의 자그마한 것일 뿐인 자신의 감상에 젖어있지만 말고, 타인과 공유되고 있는 그 대화의 순간, 나의 외적인 표정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러한 집중이 곧 가장 건설적인 인생 설계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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