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삶에서 불안은 불행과 동의어가 아니었던듯 싶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대로, 부의 감정 중 하나로 알고 있던 불안이야말로 곧 내게 '일'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다주는 근본이었다.
불안해야만 나는 벼락치기를 해왔고, 그 벼락치기는 생각보다 잘 이루어져 높은 성취를 가져다 주었다. 그 벼락치기로 인해 나의 평상시가 무지함으로 가득차 있거나, 만성적인 피로로 가득차 있다 할지라도, 어찌 되었든 시험보는 그 순간만큼은 나는 꽤나 괜찮은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여기에 서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온갖 것들을..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해오고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 어느것이나 함부로 쥐어먹고, 그 어느것이나 나의 취미로 삼아 나를 불안에서 떨쳐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결과는 무의미한 것으로 귀결되었다. 한 순간의 성취에도 이르지 못한 채로 타인에게 잊혀지거나, 설령 내가 어느 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올린다 할지라도, 그걸 정말 내가 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예컨대, 나는 내 전공 분야가 아닌 어떤 예술 분야 하나에서 상당히 괜찮은 물건을 뽑아낼 실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산업은 우리나라 내수에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분야였고, 나는 허망하게 그저 그것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만일 내가 그것을 가지고 생산성 있는 무언가를 만든다 했을지라도, 전공 자체가 아닌 내가 그것에 대해 신뢰성 있게, 그리고 그것을 경력 삼아 앞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진 못할 것이 뻔하였기에, 나는 두 눈 뜨고 그것을 보내버렸다.
혹자가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그냥 그걸로 먹고 살지 그랬냐"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것만 가지고는 향후 앞날을 약속하기 힘들 것임을 깨달아버렸다. 그 예술 분야만큼 어떤 압도적인 천재성을 가진 누군가가 모든 것을 휘어잡는 양상을 보이는 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그 분야에서의 성과는 나에게 무의미한 것이었다. 요컨대, 그 분야에서의 성과물의 주체는 내가 아니었다. 그저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한 순간 내 결과물이 잠깐 스쳐지나간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잊혀질 것임이 눈에 보였다.
그 사이에 내가 놓친 전공 지식들과, 자격증들은.. 지금에 내 눈 앞에 어른거리며 나의 불안을 돋우고 있다.
나는 멀미가 난다고 생각했다. 잠이 밀려온다고도 느끼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 현실을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 지금 일단 눈이라도 감아야 내가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처한 현실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생각되었다. 도대체 나는 몸이 몇 개여야 이걸 감내할 수 있을까?
이번주 주말, 토요일 15시 40분 이전까지 나는 월~금요일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잉여 활동할 것도 없이 오로지 그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합격할 수가 없다.
나는 왜 이전까지 이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던 걸까? 이제는 답할 수 있다. 단지 불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불안이 곧 나의 동기 유발의 원천이고, 행동의 원천이고, 곧 성공의 원천이다. 무언가 치료를 받으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지하게도, 이 불안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나를 이끌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어떤 치료를 받으면 정말 드라마틱하고도 갑작스럽게 개인의 신념, 계획에 따라 나를 올바름의 정도로 이끌 것인가? 나는 그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불안이 사라진 삶 속에서 내가 이룩해낼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인정하기 싫지만 불안이 곧 나의 행복이 된다. 불안이 곧 행복이라고 이야기 할 심산은 없지만, 불안이 곧 행복을 이끈다는 것을 나는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혹자는 불안 자체가 불행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그 불행으로 하여금 근시일 내의 행복이 확정적으로 고정될 수 있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미 알고 있다.
문제점은 이미 익히 알고 있다. 불안이 영영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내 상태는 이미 불안이 영영 끝나지 않는 상태이다.
지금에 시험 기간이 되어 불안으로 공부하지만, 그 불안의 정도는 예년보다 몇 배에 이르는 것이어야 했다. 요컨대, 중학교 때의 불안과 지금의 불안은 그 정도에서 차이가 심각하다. 나는 예전의 불안감으로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한편 그 배에 달하는 불안이 내 피부를 쓸어내리면, 그제서야 나는 숨 막힐 정도의 불안에 놓여있음을 깨닫고 불안의 파도 속에 일부로 잠기는 것이다. 몸을 짓이기는 파도와 같은 불안이 올 때까지 싱글벙글 놀다가 눈 앞에 그것이 닥쳐오면 그제서야 제 몸을 불안에 맡겨버리는 작태, 이제 나는 그 불안마저 나의 행복이라고 자기합리화하고 있구나.
내가 불안에 잠겨 숨도 못 쉬는 것도 행복이라고 자기합리화하고 있구나.
내가 불안에 잠겨 잠도 못 자는 것도 행복이라고 자기합리화하고 있구나.
내가 불안에 잠겨 수명이 짧아지는 것도 행복이라고 자기합리화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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