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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iness

이득과 손해를 감정적으로 판단하기에

 고정관념의 탈피가 주는 이점은 실로 대단하다.

 

 그 많고 많은 이점들 중에서도 가장 의식하기 어려운 것을 오늘 집에 가는 중 깨달았다.

 

 오늘 있었던 일은 무엇이냐면, 강의노트를 프린트하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PPT는 기본 2장을 묶음으로 A4 1장으로 인쇄해야 돈이 덜 드는데, PPT 수 별로 다 A4 한 장씩 인쇄해버렸다.

 이는 심각한 낭비를 초래하였는데, 

 사실 i class에서 인쇄한 것이라 장 당 10원씩 총 430원의 낭비가 들었다.

 

 나는 이 조그만 금액만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이 아니라,

 대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갑자기 왜 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해답은 최근 시험이니 뭐니 한다고 무리해서 잠을 안 잔 것이

 지금의 몽롱한 정신상태를 만들었고, 누적된 스트레스가 충분히 해소되지 못하니 집중도가 떨어진 것이라 생각됐다.

 

 물론 이를 언어로 표현하자면 결국 앞뒤 문맥을 다 자르고 '돈 430원 낭비했다고 당황스러움을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사실 양면 인쇄를 한 것이 아니라서

 이 123 장의 종이는 이면지로 쓸 수 있었다.

 물론 내용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지금 연습노트로 사용했던 것이 큰 거 하나가 다 소모되었으니   

 노트 살 준비를 하고 있긴 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으니,

 이면지로 쓸 A4를 10원 주고 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가격대비 노트를 사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지만,

 마냥 430원을 땅바닥에 버린 것이 아니라 현물로 그 가치가 있는 등가교환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는, 프린터 내용을 보고 공부한다는 목적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프린트를 구기면 안 되고,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른 고정관념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구기면 기분도 별로고 찢어지면 마음도 상하지만, 사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근 3일동안 종이 구겨지든 말든 일단 600Pg가량을 외우고 곱씹고 해야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프린터물의 상태가 어떻든 그 내용을 내가 볼 수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생각에 미쳤다.

 

 즉, 프린터물 아무리 소중한 것을 뽑는다 한들,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묵히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며,

 그것은 구겨진 종이, 땅에 떨어져 물에 젖고 발로 밟힌 종이와 그 가치가 다름이 없다.

 혹시 나중에 볼까 묵혀둔 종이라 할 지라도, 그것은 지금 당장에 똥 닦을 휴지보다도 못한 종이인 것이다.

 그 종이 위에 어마어마하게 비싼 수업료, 강연료를 내야 간신히 손에 들 수 있는 역학 내용이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는 중간고사 이전, 복학을 하고 난 뒤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모를

 백수와 다름없는 생활 이후 중간고사 하루 공부 12시간~20시간의 벼락치기 지옥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진작에 미리미리 조금이라도 보았더라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심적 고통은 최대로 받으면서 해야할 일은 산더미같은 일이 발생하질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상황이 곪을대로 곪은 것을 어떡하나,

 언젠가는 보겠지 하던 프린터물은 결국 중간고사 시험 전 날에서야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것이 재료역학, 열역학, 공작법 등의 실로 보통치 않은 지식들이라야 해도 말이다.

 그것이 내 눈에 들어오고 내가 이해하기 이전까지는 평범하게 백수짓을 하며 살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님은

 자명할 뿐더러, 도통 관심이 가질 않는 것이라 여겨 결국 프린터물에 라면 국물이나 흘리는 우매한 짓을,

 할 수 있는 동물이 바로 나임을 깨달았다.

 

 

 

귀차니즘의 결과로 3일간 벼락치기로 무턱대고 외워야 했던 600~700 여 장의 시험 프린터물들

 

 

 결과적으로, 오늘 뽑은 123 장의 프린터물은 기껏해도 1230원이었으며,

 묶음 페이지로 인쇄하면 430원을 아낄 수 있다 하여도,

 그 내용을 보지 않으면 애초에 1230원 모두를 땅바닥에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근본적으로 대학 공부를 벼락치기로 간신히 학점이나 남기며 사는 행위는

 대학 등록금 3600만원을 땅바닥에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간 살 전공 서적들의 값들,

 등교를 위해 들었던 교통비, 혹자의 보증금, 월세비, 전세비,

 심지어 대학교의 특정 학과에 가고자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 시기의

 고등학교 이상의 시기, 중학교 3학년 말의 시기에서부터 학업에 관련된 모든 돈을

 땅바닥에 버린 것과 같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뜻은, 그간의 학업이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짐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간의 돈도, 시간도 날림을 의미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인생을 헛살았다고 이야기함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유용성의 관점에서는, 인생을 헛살았다고 욕할 수 있다. 쓸모없이 인생을 낭비하였기에,

 그러나 존엄성 관점에서는, 어찌 되었든 사람 수만큼이나 존재하는 인생의 다양성 속에서

 특정 방향을 기준으로 가치판단하여 해당 아무개의 정체성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다양한 인생의 방향성 속에서 해보지 않고 알 수 없는 분야들에 대해 방식이 어떻든 한 번이라도 경험하였기 때문이고,

 설령 특정 분야에서 특출나지 않고 범재로 남는다 한들, 알게 모르게 쌓아온 지성이 대기만성적으로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런 가치평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당장 자기 자신의 눈 앞에 놓여있을 상황을 논한다면,

 그야말로 프린터물의 가치를 한 번 땅에 떨어뜨린 것으로 나비효과처럼 자신의 인생 일부가 부정당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프린터물 430원 어치를 더 하고 난 다음에 깨달은 것이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고정관념은 바로, 연습노트는 따로 있고, 프린터물은 오로지 눈으로 보고 읽는 용도로만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재고하면, 돈도 시간도 그냥 버린 것이 아니게 된다.

 430원만큼의 현물을 정당하게 산 것이 되고, 이는 프린터물이 2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선제조건이 된다.

 

 여하튼, 오늘 430원을 날렸다고 손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필요했던 연습노트를 산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득일 수도 있었다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