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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간암, 유산다툼, 도박, 정신병, 개인회생, 파산을 그만 보고 싶구나

 살아가면서 바라볼 수 있는 여러 사람의 낯낯을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았다.

사실 쉽사리 보기 힘든 광경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멀리서도 비극이고, 가까이에서도 비극이었던 그들의 삶을 의도치 않게 자라오며 두 눈 뜨고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볼 수밖에 없었구나.

보다 낙관적이고 좀 더 젊게 살고 싶었다.

갓 20대 젊은이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구나.

정신병은 히스톤 단백질의 메틸화 현상 및 유전 시의 특정 전사 인자의 유전 등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유전될 수 있는 것이라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 나는 생각해보길,

정신병은 유전이 문제가 아니라 오염이 문제인 것이라 생각되었다.

가족을, 가까운 친척을 하나의 우물이라 빗대어 본다면, 정신병은 그 우물 안에 풀어진 독이다. 독은 우물 안의 지하수든, 개구리든 그 무엇이든 오염시키고, 파괴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든, 지하수든 그 어떤 것이든 우물 안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오염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정신병은 오염이 문제인 것이다. 

왜 오염되냐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당사자건, 주변인이건 치료할 때를 놓친다. 그 뒤부터는 낭만이 없는 삶이 지속된다. 하염없이 후퇴하고 퇴보하는 인생이 되며, 어느 순간 스스로를 낮추고 때로이 길가 위의 식물들을 바라보며 해탈을 꿈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박에 더 쉽게 빠지게 된다. 이 순간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하며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합리적으로 틀린 선택이 되고, 침몰한다. 그 끝에 남는 것은 남탓이다. 모든 자책감을 스스로 짊어진 끝에 남는 것은 남탓이 된다. 죄책감의 한도를 넘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 사이에서 마치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듯 미화할만한 껀덕지를 찾아내고, 모든 죄악의 시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순간에 순수한 정신적 퇴행이 시작된다. 모든 책임을 벗어 던지고 생리적 욕구를 좇는 날 것 그대로의 스스로를 이따금씩 발견하고, 부끄러워 한다. 목욕을 한 지 오래된 것은 문제되지 않지만, 머리를 깎지 못해 주변인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는 것은 몹시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 모든 취약점으로부터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으로 우울감을 역설하지만, 머리도 깎지 않은 거지꼴의 사람이 발설하는 우울은 외관대로 더러운 것으로 주변에게 인식된다. 그것으로 다시금 오염이 시작된다. 

 

어쨌든, 

나는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었구나 하였다.

나는 생각보다 깊은 곳에서 위에만 쳐다보고 있었구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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