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흥미 위주로, 동물 본면의 원초적 욕망으로 그저,
컴퓨터를 켠 채로 나 자신이 그저 비트로 나열되는 무의미한 쓰레기들을 눈으로 먹어가면서
오늘도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구나 하고 뜬 눈으로 시계에 욕짓거리를 하는 모습
그야말로 어리석다. 어리석음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떠한 유의미함도 창출하지 않은 것 아닐까
그렇다. 나는 아무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내 차후의 인생설계 진행도는 여전히 0%이다.
본능적인, 유전자에 새겨진 욕망에만 치중하여 네트워크 상의 쓰레기들을 갉아먹는 모습이 마치 마약 빠는 쥐와도 같다..
자신이 자신의 행동을 선택함에 있어서 자신의 의식도 없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정체성도 5년 째 찾지 못하고 그저 실험실을 돌아다니고
아무 의미없이 자신의 시간이 낭비된 것에 욕짓거리를 하지만 정작 제 3자가 보기엔 개선 의지도 없이 스스로 도태되는 무의미한 실험
이렇게 컴퓨터만 하고 놀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라고 스스로 되물으며 중학교 때부터 시험 보기 하루 전날 밤에만 공부하곤 했다.
수능을 보기 전 날은 아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학에 들어서 시험을 볼 적에는 어땠었나?
오히려 군대에 가서 아무런 시험도 없이 그저 껍질만 학대되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정신은 집단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한 것인지 소거되었다.
개인의 의지, 개인의 선택, 개인의 노력, 개인의 습관이 중요시되는 맥락에서는 정신을 놓고
집단의 의지, 집단의 선택, 집단의 노력, 집단의 관행이 중요시되는 맥락에서도, 정신을 놓았더니, 오히려 잘됐다.
"시키는 대로", 말한 것을 그대로 행하되,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의심의 향불을 두 눈 뜨고 못본 채 하여 재가 피어오르니
그 재는 나에게 도움이 되더라 .
나는 이제 다시 대학에 돌아와 언젠가, 그러나 빠르게 돌아올 스스로에 대한 시험, 스스로에 대한 외부의 평가에 나는 어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왜냐, 대체 왜 그래왔나? 라고 물을 적에 나는 "시간 흐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막 살아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말인 즉슨, 나는 나의 선택, 주체성 있는 선택을 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과거의 내가 하지 않았던 선택에 의해
고통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고 왜 굳이 미래에 대해 오늘날 이렇게까지 피해를 받아야 할까
말인 즉슨,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해서도 오늘날 책임을 지는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그런 방탕하고도 무계획적인 삶을 계획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
인지부조화의 영역도 아니다. 왜냐면 의식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에 있어서 주체적이고 의식적이라는 것을 이성에 근건한 행동으로 스스로 이해를 했다면, 주체적인 선택은 여기에서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에 근거하여 행동을 해온 것이고, 이것이 "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음에도 책임을 지는 것 같다."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말인 즉슨, 나는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에 근거한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는 것이며, 이것이 내가 어떤 계획을 해왔음에도 실현되기에
크나큰 어려움을 겪은 까닭이다. 나의 행동선택 근간이 나의 의식적이고도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로지 근본적인 욕망에 예속된 선택밖에 하지 못하는 중독 상태에 빠졌음을 말할 뿐이다.
이렇게 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음에도 오늘날 괜시리 남은 시간이 없는 것 같고 왜 이렇게 되었나 후회스럽고 나는 왜 그랬을까 자책하고
하는 일련의 행동은 스스로 의식적으로 잘못을 반성하는 행동인 것 같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욕망에 근거한 행동 이후에 발현되는
단계적 행동일 뿐이며, 지속적으로 욕망에 근거한 행동을 함에 있어서 쾌락의 역치가 순간적으로 높아진 상태에서 잠시 쿨다운되기 위해 기다리는
자연스러운, 추후의 반복되는 욕망 발현에 필요한 행동이다.
어떤 욕망을 실현해서 얻을 쾌락을 기다릴 적에, 그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발생하는 책임, 그 책임에 따른 감정적인 행동도 같이 욕망하는 것이다.
욕망은 +와 - ,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배제하고,
후천적인 사회화의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도덕적 책임감, 당위성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아야 이해될 수 있다.
욕망은 그저 어떠한 형태의 결과이든 한 행동이 최대한 몇 개의 자극을 받을 수 있는지, 자극들이 어느 정도의 주기로 반복되는 지를 고려해야한다.
욕망에 근거한 행동의 결과는 사회적 통념 하에 성공과 실패로 구분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을 한 원인, 욕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할 때에는 사후처리의 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욕망에 근거한 어떤 행동을 할 때에 어떠한 결과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행동은 후천적인 사회화 과정 중 학습된 것이다.
어떠한 요소도 고려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욕망에 대한 행동을 분석할 때에는 그저 자극의 개수, 주기만을 고려하면 된다.
또한, 욕망에 근거한 행동을 반복하면 할수록 사회화 과정 중 습득한 '책임'이라는 이성적 사고는 무뎌지고 원초적 욕망에 계속 접근하게 된다.
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