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tiness

지금 보고 있는 것만으로는 내가 여태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Not-exist 2019. 6. 4. 21:21

나는 내 흔적을 계속 찾고 있지만 내가 나로서 시간을 들여 만들었던 일기장 속에는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과거와 기분과 미래의 계획과 인생의 깨달음을 담은 일기장은 누구나가 사용하는 글자들로 구성될 뿐이다.

 

내 목소리 얼굴 내 체형은 거기에 담겨있지 않다..

 

내 독창적인 표현이라 할 것들은 일기장에 한 번 쓰여지고 그것이 타인에게 재평가되지 않느 이상 그저 내가 한순간에 잊혀간 한 번의 손가락 놀리기였을 뿐이다..

내가 남긴 흔적은 일기장으로서 온전하다.

 

그러나 거기엔 타인과의 관계가 전무하기 때문에 나는 혼자 스스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사회 속에서 혼자 살려고 아둥바둥하지 않는 이상 무의미하게 고립되어 있을 뿐임을 알았다..

내가 쓴 일기장들은 혹여나 혹자가 보기에 그것이 고상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그러한 아이디어를 내었을 누군지 모를 나와 관계없이 그저 그러한 표현들이 생소하고 직설적이기에 인상깊다고 느꼈던 것일 뿐이다..

 

내가 일기를 내 유일한 벗으로 삼은 것이 이렇게 희대의 실수로서 나에게 남을 줄이야..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3년 전에 적은 일기를 보고도 나는 한 일주일도 안된 일기를 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군대를 다녀왔든 무슨 인생의 대단하신 깨달음을 얻었든 3년 전과 똑같은 일상을 변변치 못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내 일기로 깨닫는다..

일기의 좋은 점은 과거가 다시 반복될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경고하는 것이겠지만..

오늘날에 내가 나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대단히 제한되는 와중에 그저 누구나가 한 번 스쳐지나가면서도 적을 수 있는 문자와 기호 등으로 점쳐진 일기 등을 내가 온전히 나 혼자만의 대단한 가치로서 내세우고 있었다는 것이 우습고..

나는 내 얼굴과 목소리와 몸을 잃어버리고 그저 지금 내가 적고 있는 글자를 이딴 흰 페이지에 납부하기 위해 눈뜨고 코 베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 많이 안타깝다...

정말 내가 나라고 아우성쳐도 그것을 여기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