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로 살고 있다.
군전역을 하고 바로 2학년 복학을 하면서 느낀 바로는,
벼락치기가 너무나 고달프다는 사실이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전시회 보고서 과제가 개강 2주차부터 훅 들어오더니,
마침내 중간고사 기간에는 뭐 말도 못할 정도의 공부양으로 목숨을 위협하였다.
이 와중에 간신히 깨달은 것은,
첫째로,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는 점에서 나는 군입대 전과 비슷한 시간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며,
이에 의해서 나는 또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벼락치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1학년 때 벼락치기로도 근근히 버틸 수 있었던 학점선이,
2학년에 들어와서 갑작스런 파도와 같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전공수업의 압박감에
스르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말인 즉슨, 1학년 때와 같은 벼락치기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마침내 중간고사가 시작된 이번주중 내가 한 일은 상기한 두 사실로부터 도출된 어쩔 수 없는 발악이었다.
절망적인 시간관념에 의해 공부는 여지껏 하지 않은 마당에 학점은 높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 자위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자
군시절의 나의 인내심이 작동을 한 것인지,
어떻게든 시험 보기 전 날이든, 심지어 오늘같은 경우 시험보는 당일날에든, 공부를 하고 있다.
하루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내가 희망차게 글을 쓸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대견하기 때문이다.
아니, 진작에 공부를 안 해서 이 지경이 왔는데 어떻게 자위할 수 있느냐? 하면,
나는 벼락치기를 20시간을 하고 있다...
수학이 벼락치기가 되는 과목이 아니라면, 그냥 머리 박고 시험 보기 전까지 안 자고 24시간을 내리 공부해야했다.
다만 인간의 한계로 인해 3시간은 잤는데, 어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교양 중에서도 한 따까리 하는 양의 시험을 봤는데,
글쎄 너무 게을러서인지, 나는 시험 보는 당일날 아침 7시부터 공부를 하였다.
양은, PPT 13Pg씩 총 21절, 즉, 273Pg의 양을 외워야 했다.
이 억이 나오는 양에 공부하다가 토가 나오지 않을까 하였지만,
어째 공업수학에서 미분방정식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에 비하면
동북아의 국제정세를 외우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이니...)
되려, 시험 보는 당일날 공부한다는 금기를 행하였음에도,
그냥 술술 잘 읽혀서 정오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또 잠을 잤다. 그리고는 다시 밤 9시까지 읽었는데,
솔직히 이게 내가 잘 외우고 있나 감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2회독은 하였다.
그래서 시험을 봤는데, 글쎄 시험지를 폈는데 토가 나올 것 같았다.
문제의 난이도보다도, 그냥 내가 밥을 하루종일 밥을 안 먹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허기와 함께 어떻게든 시험을 보고 났는데,
긴가민가하던 것이 결국 정답이었음을 알고 마음만은 풍족하였다.
중요하게 느낀 점은,
1회독을 할 때 말을 하면서 느리게라도 일단 읽고,
2회독을 할 때 눈으로 정말 대충 1분에 3Pg~4Pg씩 읽어도 기억에 남기는 한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경험은 무엇이었냐면 이것이었다.
'1991년 남북비핵화선언이 이루어진 뒤 1992년 말에 미국이 반도 내의 전술핵을 철거하였다'는 문장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보았을 때에는, 논리적으로, 시기 순서상 맞는 말이지만,
왠지 이 문장을 읽을 때의 운율이 맞지가 않았다.
어감이 맞지가 않다고 느낌이 온다고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뭔가 이 문장을 책에서 보았을 때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기억으로 하여금
이 문장이 석연찮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하튼, 진위 판별에서 X를 찍었는데, 글쎄 맞았다.
지금 정확하게 검색을 해보니 1991년부터 논의된 사항은 맞지만, 발효는 1992년에 이루어졌으며,
전술핵 철수는 1991년 말에 이루어졌다고 나와있다.
중요한 점은, 이 문장을 시험지에서 보면서,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설마 했고,
설마 년도 수를 가지고 문제를 냈을까하는 조마조마함이 있었는데,
글쎄 알 수 없는 '어감'이 확실한 답을 내려주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오늘 깨달은 점은,
일단 2학년 전공 및 교양에는 최저 13시간~20시간의 벼락치기가 필요하며,
일단 그 벼락치기로라도 그렇게 공부를 하면,
보통 내기 공부를 한 느낌이 아니라 꽤나 자세하게 공부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운율을 말한다.
시험지 위의 문장을 읽음에 있어서 어색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운율을 익힐 수 있게 된다.
어쨌든, 그 운율 하나로 나는 정답을 맞혔다. 그래서 신기해서 적어보았다.
다음주 월요일에는 271Pg의 배가 되는, 500Pg 가량을 시험 본다.
더구나, 주관식까지 있는 시험이다. 계산해보니, 이걸 2회독 하려면, 경험적으로 볼 때 28시간은 필요하다.
남은 주말 48시간 중 28시간을 이거 하나에 쏟아야 한다.
다음주 화요일에는 열역학 시험이 있다.
이 열역학은 재료역학과 더불어 내 앞으로의 공대 생활의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부를 하지 않았고, 깊이 후회를 느끼면서 나는 벼락치기를 해야한다.
그런데, 이미 기계공작법이 500Pg나 있으니,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계산 과목은 Pg에 무관하게 시간이 많이 든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첫째로, 나는 적어도 하루를 기계공작에 투자하되,
일요일만큼은 열역학을 마스터해야한다는 것이다.
설령 기공작을 재수강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열역학 만큼은 지금, 내가 에너지밸런스식을 어떻게든 외워서라도, 이해하지 않으면
내 전망이 어떻게 될지 자명하다. 아 제발,.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