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던지는 의문
금일 나에게 던졌던 의문은 다음과 같다.
(1)나는 오늘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음에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수업을 아는 체 하였다. 나는 쓰레기다.
-이는 복습을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며, 복학을 한 뒤 모름지기 해야했던 일(고등학교 수학1부터 간단하게 개념만 복습하기)을
당연스럽게도 자연스럽게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나는 그렇게나 무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부터라도 하면 되는 일이다. 계속해서 과거 속의 스키마ㅡ수학을 잘 하지 못했었다는 경험ㅡ를 상기해보았자
앞날을 살아갈 자신에게 무거운 족쇄만을 다는 일이 된다.
복습을 하지 못해 오늘까지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였고, 다음주에 시험이 있다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것은 그저 책을 다시 펴보면 되는 일이다.
근본적인 나의 문제점이자 여타 다른 아무개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안좋은 습관 중의 하나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을 벌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생활을 오로지 게임에 빠져 살았고, 수업 시간에 필기를 끄적이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자위일 뿐이고 실은 복습도 하지 않았다.
입시의 결과에 대해서 아직 왈가왈부할 의문은 아니니 일단 지금의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이미 늦은 것을 알았으니, 조금이라도 나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고 끌고 나가야 한다. 말인 즉슨, 조금씩이라도 복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부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 "해야한다고?" "해야한다" "이걸 해야 하니 저건 하지 말아야 한다"
극단적인 이분법에 의해 자신을 욕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어 마치 청교도적인 삶을 최우선의 삶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인 사실ㅡ시간을 욕구해소에만 쓰지 않고 자아실현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ㅡ을 착오하여
욕구에 대해 금단의 의미부여를 함으로써 자신을 스트레스만으로 움직이게끔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는 좋지 않다.
'이제 곧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불안감'과 '그간 쌓아온 죄책감'만을 동기부여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그저 스트레스 및 아드레날린에 대한 트리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변수가 곧 그 자체만으로 온전히 임무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는 원인이 되어야 한다.
단정적인 표현에 거부감이 든다면, "되는 것이 좋다"고 바꾸겠다. 이것이 마음이 편하다면
중요한 점은 지금 무얼 해야할 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상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해야할 것에 대해 그저 "나는 이걸 잘 못해, 수업을 따라가지도 못했어. 나는 쓰레기야 여태껏 뭐했지"하며 주저앉는 것은
그것으로 아무런 방향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에 기피해야 한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대해서도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의 아래에 있는 사고인데, 이것도 피해야 한다면,
보다 시간 투자 하에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은 "아 일단 큰일났다. 일단 시작하자"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면 될 것이다.
"나는 여태껏 뭘 했지. 나는 쓰레기야"하는 사고방식은 시간 투자 대비 아무런 이득이 없다.
(2)이 공부를 만일 내가 더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었다면 어땠을까. 어차피 같은 노력을 해도 이미 대학교 수업인 이상 내가
학벌을 꺨 수 있는 방법은 없는데......
- 이 의문은 갑자기 어느 순간에 떠오른 것으로서, 열등감 및 어리석음에 대해 가장 핵심을 찌른 의문이다. 그야말로 무지한 생각이다.
첫째로, 대학교 수업을 이대로 안 들으면, 나는 그나마 진학한 대학교에 대해서도 제적 당하거나 졸업 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고등학교 때와 나아진 게 하나도 없는 채로 사회에 던져지게 된다. 그것은 학벌에 관계없이 대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여 그것으로
어떤 결과라도 남긴 아무개에 비하여 정말 비참한 꼴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하다못해 자격증이라도 따면 모른다.
지금 대학교 수업을 따라가지도 못하는데 과연 혹시 몰라 내가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떻게 될까?
무조건 퇴학당할 것이다. 혹은, 졸업할 때마저 "이 학점이 이게 나를 발목을 잡나 이게 어떻게 이럴 수 있나"하며
무조건 후회할 것이다.
둘째로,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 아무개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내가
내심 그들과 비교를 하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지한 발상이다. 대학교 입학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데도 불구하고 그 경과라고 볼 수 있는
대학교 수업 및 학점만 비빌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자만이며 오만이다. 그들이 좋은 대학교에 입학을 목표로 투자하였던 돈과 시간을
비슷한 만큼 내가 어디엔가는 투자를 해야 그들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대학교 수업'이라는 것으로 뭉뚱그려 그 아무개들과 비교를 하다보니 인식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절대적으로 시야가 좁은 것이다.....
셋째로, 학벌에 무임승차하고자 하는 것은 좋지 못한 발상이다.
설령 좋은 학벌을 가진 아무개라 할 지라도, 그가 대학교 수업을 하지 않고 그저 놀기에 급급하였다면, 그것은 좋은 학벌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 정도로 좋은 대학교 입학을 위해 어렸을 적 벌였던 내신 전쟁, 수능 전쟁은 모두 대학교 수업을 이해하기
위한 발판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것은 학벌과 대학교 수업을 논하기 이전에 이미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이다. 반면 신체는 이제 군대도 갈 것이고, 나이는 먹어갈 것이니 정체된 인식에 비해 달라지는 현실에 못 따라가면
그대로 투자 실패로 이어진다. 그간 학업에 투자한 시간과 돈이 곧 자신의 임금으로 변환되었어야 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그것은 폐인과 다름 없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가상 속의 인물을 지어내 그것으로 자위하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분명 그렇게 여타 다른 아무개들과 독보적인 학벌을 가질 사람은 그것을 쟁취해내기 위해 그간 투자하였던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정말 아까워서라도 뭐라도 할 것이다. 혹은, 그렇게 투자 가능한 돈과 시간의 여유를 이용해 다른 투자거리를 찾아냈다든지..
그저 학벌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면 이렇게 생각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상상 속의 사람으로 위안삼으며 자기자신도 대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에 마음 놓는 나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상상 속의 대상+학벌도 없는 사람'으로서 현실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