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tiness

빈자의 취미는 부자를 따라갈 수 없다. 게임을 무과금으로 즐기는 만큼 인생이 답답해진다.

Not-exist 2020. 7. 22. 03:43

 서두에 밝히기를, 나는 빈자이다.

 빈자가 보기에 빈자의 취미는, 생산성과 관련되어야 할 당위성을 지닌다. 만일 취미로라도 돈을 벌지 못한다면 빈자는 그대로 자신의 가난함에서 탈출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간에선 일반 대중보다도 금욕적인 삶을 사는 빈자를 보며 "열심히 산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빈자로서, 그에 대한 반발심("아니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는데 왜 나는 그렇게 놀면 안 되지?"하는 심리)으로 풍요로운 삶을 만끽하려고 하면, 그 선택 단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빚으로 점철될 수 있으며, 이내 필연적으로 훗날 금욕적인 삶을 강요당하는 굴욕적인 노년을 보낼 수밖에 없게 됨을 알아야 한다. 빈자의 인생 속에서 기회가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꼭 달성해야만 하는 과업이 있음에도,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여 일탈해버리게 되면, 결국 도박과 같은 한탕주의에 자신의 미래를 걸어버리는 말로를 맞이하게 된다. 말인 즉, 미래는 없고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게 된다는 의미이다.

 차설, 오늘 주로 쓰려고 하는 바는, 게임은 빈자의 취미로 어느샌가 통용되고 있는데, 오히려 반대로, 부자의 취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어린이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15년은 낙후된 생각이다. 작금의 세태를 바라보길, 플레이어가 게임 속 자체적인 컨텐츠를 누리는 것 이상으로, 필연적으로 유저 간의 현질 경쟁 내지 가챠 등의 도박에 빠지는 것이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가챠 등의 컨텐츠를 넣지 않은 게임을 기똥차게 만들어봤자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개발비를 회수하기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사실 게임의 시각적 요소에 다분히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언리얼, 유니티 엔진 등의 거품을 게임 회사가 그대로 게임에 녹여내기 위해선 유저들의 컴퓨터 사양도 덩달아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당연히,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게임 하나를 위해 굳이 컴퓨터를 바꾸고 싶어하지는 않기 때문에 결국 '유저 눈높이에 적당히 맞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든 저사양 PC에도 게임을 우겨넣을 수 있는 고도의 프로그래밍, 텍스쳐 및 광원, 이펙트, 텍스쳐 손질 뿐 아니라 단순 일러스트, 모델링, 애니메이션 키프레임 등도 맞춰줘야 하며, 애초에 이러한 기술 개발 비용 외에도 서버 유지, 유통, 배급사 라이센스, 심의 등급 조절, 고객센터 유지비 등의 지출을 고려한다면 다분히 게임 회사들은 현질 경쟁, 가챠 등의 도박적 장치를 넣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예컨대 다크소울1~10까지 만들었다고 해도 '페이트그랜드오더'라는 일러스트 위주 모바일 가챠 게임의 수익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솔로 플레잉 위주의 게임들도 그나마도 유저 자체적인 모드, 패치 등으로 과거의 인기를 연료 삼아 수명이 연장되고 있을 뿐, 유저들이 카드 혹은 휴대폰 결제를 하는 데에 심리적 부담감이 적은 '모바일 게임' 등으로 주요 게임 플랫폼이 옮겨지고 있으며, 동시에 게임 컨텐츠 자체에 도박적인 장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혹시나 빈자의 취미로서 과거 게임을 즐겨왔던 사람이라면, 이제는 게임도 마치 골프처럼 어느 한도 이상의 금액을 끊어야만(천장을 뚫어야만) 컨텐츠를 모두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분명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금같은 시간을 게임에만 쏟았다면 "나는 무과금 유저로서 충분히 이정도까지 왔는데? 게임에 돈을 왜 질러?"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무과금으로 게임을 하는 시간 대비, 과금 유저들이 과금으로 시간을 아끼는 동안 취업 공부에 매진하여 유의미한 연봉 상승을 일구었다면, 혹은 그에 준하여 현실을 충실히 살았다면, 무과금 유저로서 자부심 가져야 할 것은 실상 무의미한 것이 된다. 과금 유저는 "그렇게 무의미해보이는 게임에도 돈을 질러서" 자신의 개인적인 시간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었으며, 무과금 유저는 "그렇게 무의미해보이는 게임에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어서" 자신의 돈을 아꼈으나 그만큼이나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었음을 주지해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는 건 사실 돈보다 더 큰 문제가 된다.

 쌉꼰대처럼 질타하자면, 과금 유저든 무과금 유저든 일차적으로 자신이 게임 회사에 들어가거나 관련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무의미하게 노동에 준하는 행위로 자신의 경력을 낭비하였다는 점에서 잘못이 있다. 더구나 무과금 유저는 특히 무경력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타격이 크다는 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

 요컨대 과금 유저는 게임에 사용한 지출로서 매몰비용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지만, 무과금 유저는 매몰비용을 시간으로 환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성인의 입장에서는 게임에 시간을 들이는 것 이상으로 생각보다 해야할 것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분명 책임져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때 문득 생각하길, 어렸을 때 게임하는 것은 실상 돈을 벌기 위한 행위와 직접 연결되기도 힘들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무과금 유저가 항상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 하기엔 어폐가 있을 수 있다고 반문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어렸을 적의 시간은 향후 인생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점에서 돈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돈보다 시간이 더 가치 있는데, 어렸을 때의 시간은 곧 뇌 발달에 있어 중요한 시기로서 다양한 분야의 학습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당연히 돈보다 가치 있다. 나중에 커서 돈을 아무리 써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유형의 지능'은 발달시키기 상당히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모든 연령 계층에서 시간은 돈보다 중요한 것이며, 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의 유의미한 경력을 쌓아 연봉을 올리는 것은 자신의 능력 한도 내에서 가능한 일이지만, 돈을 투자하여 자신의 유의미한 포트폴리오로 재테크 하여 훗날 시간을 살 수 있을만큼 돈을 불리는 것은 자신의 능력 한도 이상으로 다소 운이 작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매몰비용으로서 게임에 사용하는 자원으로는 돈이 그나마 시간보다 효율적임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한편, 이러한 사실 속에서 빈자는 당연히, 게임에도 돈을 쓰기가 곤란할 것이다. 이때 느껴봄직한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취미 삼을만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체감하는 것이다. 정말로 빈자의 취미로서 게임밖에 할 게 없었을까. 하물며 그 게임이란 것을 하는 데에도 돈이 실질적으로 강요되는데, 과연 시간만 축내면서 그 취미를 끝까지 달고 살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이제는 시작하고 책임을 의식할 나이가 되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렇게 말을 하는 필자는 빈자이면서도 위의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여 정말 기나긴 시간동안 게임에 빠져 살아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정말 눈 뜨고 살기 힘들 정도의 깊은 후회를 느끼고 나의 취미가 곧 게임 속에서 행하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상으로, 무과금으로서는 과금 유저들의 과금 정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함을 깨달았기에 깊은 허탈감을 느꼈고, 실은 그들이 부자로서 현명하며, 나는 빈자로서 허송세월 보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무과금으로 긴 세월동안 쌓아올린 캐릭터는 실상 '보통 유저' 수준의 특이 사항 없는 데이터 뭉치에 불과하다. 만일 게임 계정을 삭제한다고 해도 게임에 쏟아 부은 시간을 돌려받지는 못한다(돈은 일부 환불받을 수 있음에도). 

 따라서, 무과금 유저로서 자신이 빈자임을 인식하였다면, 게임은 부자의 취미로 생각을 다시 재정립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자신이 부자라면 사실 게임이건 다른 어떤 분야건 과금을 하는 데에 딱히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빈자라면 당장 게임에 들어가는 돈은 곧 자신의 식비와 연관될 수밖에 없고, 심지어 주거 안정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머리를 깎고 다닐 수는 있는지, 옷을 세련되게 입을 수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굳이 무과금이 과금보다 비효율적이며 매몰비용이 더 큰 선택임을 알았음에도 무과금을 고집하며 게임할 수는 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처절한 상황 인식 속에서도 "무과금이 가능한 게임은 무엇일까"하며 자신의 인생을 다시금 갈아넣을 곳이 없는지 찾으러 다닌다면, 그 사람에게 남은 것들은 벼락치기 내지 빚 뿐이며, 결국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한 삶이 좋다, 나쁘다 가치 평가할 생각은 굳이 없지만, 적어도 빈자로서 살아가는 지금보다도 조금 더 답답할 것임은 주지할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