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으로만 살고싶네
지나가다 보는 그 수많은 이미지들 속에서 고난만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가도 카메라 앵글을 어떻게 잡고 초점을 어딜 잡아야 했고 주시점이 어디를 목표로 하고
애초에 내가 그걸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교양과목 하나로 영화를 배우니,
하나의 아름다운 스토리를 바라보던 어릴 때와 달리 그걸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깎아간 사람들의 고난이 눈에 먼저 보였다.
어리석게도 내가 그 과목을 듣고 유튜브를 해서 5개월만에 작살난 까닭도 있겠지만서도,
실제로 영상 컨텐츠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갈지 그들의 고난에 공감이 갔다.
그 공감은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이번 생에 예술가가 될 수 없다."
한편 나는 게임을 좋아했기에, 강박적으로 회원탈퇴를 해야만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그것들을 그리워 하는 한편,
이제야 내가 취업에 관심을 가지고 직장을 알아볼 적에 게임 회사들을 바라보니,
근속연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보니 게임이 휘황찬란하면 할수록 거기에 갈려들어간 개발자들의 고난이 눈에 보였다.
재떨이를 머리에 맞았던 음악 제작자도 있고, 암에 걸린 프로그래머도 있었다.
어린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먼젓번에 태어났을 뿐인 이들은 자신의 노년을 헌납해야 했다.
쉽게 말해 건강을 해쳤을 것이라는 소리이다. 대기업이라면 조금 달랐을까. 우리나라의 절대 다수가 중소기업이고 그보다 중견기업이면 일반인에 족한 것이니,
휘황찬란함은 그를 위해 갈려나간 이들이 있기에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갈려나가서 휘황찬란하기라도 하면 좋은 것이다.
갈려나가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것도 있으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자기계발서, 동기부여 영상들의 진의가 궁금하기도 한 와중이다.
한편으로 나는 내 전공인 공학에 대해 살펴보았다.
일단 나는 공장 혹은 건설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아차"하고 놀라워해야 한다. 나는 영화업계 종사자나, 게임 프로그래머들을 안타까워 할 처지가 아니다.
내가 나의 시간을 갈아버릴 때가 오면 반대로, 그 종사자들이 나를 안타까워 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이제 알아버렸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는 건 무책임하다.
내가 오늘 이때까지 살아갈 수 있는 건 먼젓번에 태어났을 뿐인 남녀 두 사람의 헌신 때문일 뿐이다.
지금은 한 사람만이 이 생에 남아있을 뿐이지만, 도리어 그렇기에 내가 그 반쪽의 역을 다해야 할 것이 도리이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하기에, 내가 갈리는 걸 무서워 하면 안 된다.
그러니 제발 내가 게임이나 영화나 그런 문화 컨텐츠를 곧이 곧대로 즐기게 해주면 안 될까
나의 공감이 뿌리에 뿌리를 잇고 나가 타인에게 닿으니 오히려 내가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나만을 갈아버리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데, 너무나 많은 것들에 사람들의 고난이 눈에 보인다.
나는 종교인이 되었어야 하는 것인지, 휘황찬란한 모든 것들로부터 고난을 느끼고, 가난함으로부터도 고난을 느낀다.
그야말로, 애써서 인생 불편하게 산다.